보는 눈
바나나는 길다. 긴 것은 기차. 기차는 빠르다. 빠른 것은 비행기. 비행기는 높다. 높은 것은 하늘. 하늘은 푸르다. 푸른 것은 바다. 초등학교의 끝말잇기 시간에 했던 말들일 것이다. 하지만 요즘 느린 자동차, 비행기도 많다. 역마차, 엔틱 자동차, 세스나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여유가 없으면 조바심 나는 느려터진 것들, 하지만 잘 돌아가는 세상에 느린 것도 많다. 빠른 것만 보이면 늘 분주하다. 느린 것은 오히려 모든 것을 제대로 볼 수가 있다. 빨리 만난 사람 빨리 헤어지고, 빨리한 계산에는 오답이 있고, 빨리 만든 음식 맛이 없으며, 빨리 말하는 사람 무슨 말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느리기에 기다리고, 느리기에 생각하고, 느리기에 세상을, 사람을, 일을, 명암을 본다. 느려서 좋은 것은 인내심, 느..
江の島-에노시마의 저녁놀
에노시마는 가마쿠라에서 바라보면 너무나 작은 섬 바다, 후지 산, 별장, 묘지 시간과 바꾼 형상들이 여기저기 흔적을 펼쳐진다. 온갖 희노애락애요욕, 애증의 고갈을 삼켜버린 바다 저편의 에노시마가 석양에 비친다. 고통, 고민, 번뇌, 의욕, 희망이란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구체적, 이상적 , 현상적 고민을 풀어 젖히고 꼭꼭 앙금으로 깔리면, 벌써 죽음의 문턱. 시간에서 보면 자고 나면 반나절, 죽음 앞엔 하루. 일, 사람, 사랑하는 모든 낱낱을 죽음 앞에 기억될 것인가. 그리하여 산 자와 죽은 자의 해후는 파도가 밀려올 때 처절한 향연으로 시작된다. 철썩대는 파도 소리가 못다 한 恨의 굉음과 아우성으로 들린다. 이제 떠날 준비를 해야 한다. 살았던 흔적도 모습도 시간에서 보면 無 수긍도 진실도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