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인화는 나라 시대부터 있었으나 서민 대상의 풍속화가 일반적이었다. 미인 풍속화의 대가는 菱川 師宣-히시가와 모로노부 1618년이었다. 그 시대는 도쿠가와 3대가 평안한 시대였으므로 서민의 오락과 취미도 다양해지면서 그림도 상당히 높은 수준에 이른다. 그러나 풍속화는 메이지 시대부터 퇴색한다. 특히 그림의 상단 부분의 뒤로 보이는 얼굴과 포즈는 실제 상당히 어려운 모습이다. 재현하면 얼굴이 보이지 않거나 제대로 설 수 없는 포즈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모습이 그림으로 만들어졌을까? 바로 역동적으로 보폭을 크게 움직이는 부분을 실현하기 위함이다. 그의 그림은 현재 우에노 국립 미술관에 보관되어있으며 미인화의 초석을 만든 그림에 대한 평가는 높다.
세 그림은 동시에 한 손은 늘 감추고 있다. 화가의 같은 작품에서 찾을 수 있는 특이한 모양이지만 이 그림들만이 가진 매력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풍속화가 밀려나는 이유는 서양화 때문이다. 일본의 전통적인 기모노를 입은 여성은 사라지고 모나리자처럼 드레스를 한 여성이 등장하면서 쇠퇴하게 된다. 기모노의 다양한 색상이라든지 전통적인 기모노를 만드는 사람은 에도의 그림을 보고 재현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가 서민의 생활의 기모노도 역시 화려한 색상을 띄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풍속화는 에도의 서민의 생활에서도 화려했다는 것을 그림을 보고 미루어 짐작이 가능하게 한다. 기모노와 일본여성 그리고 많은 이들이 오해하는 기모노의 입기와 벗기에 대한 편견이다. 절대 혼자 입을 수도 없으며 숨도 쉴 수 없는 수많은 조임 이후 모양새가 나오는 기모노를 입고 위의 그림처럼 고개를 돌릴 수 있는가는 여전히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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