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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ip to Japan

가고시마 사쿠라지마

 

 

 

일본 규수 남단의 가고시마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곳이다. 외국의 물건들 외에도 19세기 말 일본의 본격적인 현대화 역사에 이름을 새긴 인물들 역시 사츠마 (가고시마의 옛 지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카모리 사이고, 도시미티 오쿠보, 그리고 헤이하치로 도고 모두 사츠마 하야토 (사츠마 가문) 사람들이고 이들을 본뜬 동상들은 도시 곳곳에 세워져 있다. 이렇게 동상을 세워 기념하는 것은 서양에서 유행하던 문화이기 때문에 가고시마외 도쿄나 오사카 같은 일본의 다른 주요 도시에는 보기 드문 광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에노 공원에 가면 이제는 동상이 마치 보스톤이나 런던을 연상하게 할 만큼 서양식으로 세워져있다.

 

그 외에도 사츠마 오고죠 (가고시마의 여인을 뜻하는 지역 방언)인 아츠히메 (사츠마 가문의 수령인 시마즈의 양녀)가 2008년 인기 드라마로 널리 이름을 알린 가고시마 태생의 인물 중 한 명이다. 아츠히메는 에도 시대 때 (1603-1867) 13번째 도쿠가와 쇼건과 혼인을 했다. 그러므로 가고시마는 역사적 인물의 집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은 지역 중 하나의 도시다

 

가고시마는 예로부터 지리적 특성상 세계의 문명을 일본에서도 가장 빠르게 받아들여 왔다. 조총이나 천주교, 고구마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을 일으킨 일본 근대사의 중심지로서 역사와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고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장기. 이곳 시마즈가의 문장이 가고시마를 대표하는 문장이 되었고, 서양식 군함과 일본 군함을 식별하던 표시는 향후 일본의 국기가 돠었을 정도로 일본인들에게는 유서 깊은 곳이다. 물론 한국인에게는   가슴 아린 기억만 떠오르지만 말이다.


규슈는 본디 왜구들의 본거지였다. 왜구는 한국은  물론 중국과 오키나와 일대를 무대로 활약하던 일군의 해상세력이었으니, 그들의 후손이 결국은 메이지유신도 성공했고, 끝내는 한반도 침략도 해치운 셈이다. 그들은 뿌리 깊은 해상세력이었다. 중세의 국제 무역항이었던 하카다(博多)가 있는 후쿠오카에서 흑룡회 같은 대륙 낭인집단을 결성, 조선 일대와 만주 벌판을 누볐으며, 끝내 명성황후를 무참하게 난도질하고 시간(屍姦)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일본이 섬이라면, 규슈는 섬 중의 또 다른 섬이다. 여말선초의 왜구로부터 임진왜란, 근세의 한반도 침략에 이르기까지 규슈 곳곳이 연관되지 않은 곳이 없다.

 

264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도쿠가와 바쿠후[德川幕府]를 무너뜨리고 천황정부를 다시 세운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의 무사 지도자 중 한 사람이다. 이후 일본을 진취적인 국가로 만드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일찍부터 뛰어난 정치적 통찰력을 발휘하여 반(反)도쿠가와 기류의 온상지였고 일본의 대봉건영지 중 가장 막강했던 사쓰마 한[薩摩藩]에서 지도적 인물이 되었다. 또다른 강력한 영지였던 조슈 한[長州藩]역시 반 도쿠가와라는 면에서는 사쓰마와 입장이 같았지만 이들은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러나 1866년 오쿠보와 사쓰마의 또 다른 지도적 인사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도쿠가와에 맞서 협력하기로 조슈와 동맹을 맺는 데 합의함으로써 이 같은 상황은 바뀌었다.

 

 

그후 얼마 안 가 도쿠가와 바쿠후가 무너지고 오쿠보는 새로운 천황정부에서 지도적 인사가 되었다. 서양을 여행하고 돌아온 그는 일본 경제의 급속한 성장의 필요성을 확신하게 되었다. 이를 위해 그는 기술학교의 설립과 민간기업에 대한 정부 대부 및 보조금 지급, 정부 직영공장의 건설과 운영을 지원했다. 바로 가고시마는 오쿠보 도시미치(大久保利通, Okubo Toshimichi) 를 기억하는 것이 좋다. 1830. 9. 26 일본 가고시마- 1878. 5. 14 도쿄사망

 

 

그러나 가고시마의 가장 큰 문제는 2억 6천 만 년에서 부터 5천 만 년 동안 화산 활동을 한 사쿠라지마가 분화재가 아직도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 여파로 가고시마는 5월부터 8월까지 화산재로 말미암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마치 연탄재처럼 검은 재가 온 도시를 덮으며 석탄공장 주변처럼 모든 것이 검어져 있었다. 결국 市가 아무리 청소를 하고 물을 뿌려도 불가항력이다. 바람이 불며 화산재가 날라오는 날은 비가 와도 검은 비가 오며 마치 탄광촌을 방불케 한다.

 

 

가고사마는 역사의 인물이 탄생하어 막부의 시대를 접은 것과 특히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의 문화를 일으킨 주요한 곳이지만 자연의 재해 분화구의 분출을 막을 방법은 없다는 말이다. 가고시마는 골프장이나 라면 등 관광코스로 좋은 이유도 있지만 결국 분화구 분출되는 시기에는 아무래도 여행을 자제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검은 연탄재 같은 분화구의 재가 도시를 뒤덮은 모습은 일본의 전국이 악화일로의 화산, 지진 피해가 높은 나라임은 사실이다.

이러한 악조건에도 발전과 노력을 거듭하는 일본의 역사와 인물을 다시 한 번 바라다보는 가고시마였다.

http://breaknews.com/sub_read.html?uid=213875§ion=sc5§ion2=생활/문화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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