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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panese culture

일본인의 종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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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平成25年10月1日現在(概算値)】
    <総人口> 1億2730万人で,前年同月に比べ減少                 ▲22万人  (▲0.17%)
   【平成25年5月1日現在(確定値)】
    <総人口> 1億2731万人で,前年同月に比べ減少                ▲21万2千人 (▲0.17%)
       ・0~14歳人口は 1646万5千人で,前年同月に比べ減少         ▲15万3千人 (▲0.92%)
       ・15~64歳人口は 7935万5千人で,前年同月に比べ減少       ▲122万9千人  (▲1.52%)
       ・65歳以上人口は 3149万人で,前年同月に比べ増加              117万人  ( 3.86%)
    <日本人人口> 1億2575万4千人で,前年同月に比べ減少          ▲24万3千人 (▲0.19%)

일본 2013년 10월 일 총무성 통계국의 자료에 의하면 인구 1억 2,730만이며 전년 대비 감소했지만 4세 이하가 1646만 5천명, 15세에서 64세까지 7,935만 5천 명, 65세 이상 3,149만으로  증가 추세다. 남자 61,913명 여자65,397 구체적으로 일본인은 남자  61,211명, 여자 64,544이다. 2백만에 가까운 인구는 귀화 일본인으로 구분한다.

 

1억 2천만의 인구 중 전체가 神道 즉, 신사나 신궁의 신도로 가입이 되어 있다. 다음은 불교가 8,900만이다. 그리스트교는 300만 명 그 밖의 종교는 1천만 명이다. 대부분이 불교를 믿지만, 일본에는 없는 종교가 없다. 구세군,몰몬교. 통일교, 예수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천주교. 천리교 등 신흥 종교에서부터 최소한 2개 이상의 종교에 몸담고 있다. 이처럼 일본에서는 종교의 집산지이자 종교가 주는 의미가 크다.

 

하지만 이들은 아침에 신사에서 5엔을 던지고 기도하고 저녁에는 기도하고 가족이 죽으면 납골이 있는 사찰에 간다. 반드시 오봉에는, 양력 8월 15일 사찰로 가고  크리스마스에는 구세군 교회도 간다. 그렇다면 무종교는 없는가? 물론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일본의 종교는 절대적이거나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특히 일련종의 종파는 너무나 많다. 남묘 호랭개쿄오 그 종교만 해도 정당을 가지고 있을 정도다. 더구나 공산당도 인정하는 나라다. 최근 과학의 행복이란 종교까지 등장하여 정당 진출을 꾀하지만 아직 1명의 정당인도 없다.

 

그러므로 속된 표현으로 일본에서는 종교만큼 잘 되는 장사가 없다고들 한다. 한국의 순복음이나 한국 교회들도 니뽀리, 신오쿠보에 가면 많다. 이러한 현상에는 종교단체에 세금을 추징하지 않는 약점을 이용하기도 하고 종교를 가장한 체류들이 많은 점도 특이하다. 매일 자고 깨면 생기는 종교가 과연 인간에게 어떤 영향력을 주길래 이처럼 많이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유럽은  카톨릭이다.미국은 밥티스 즉 침례교다. 영국은 성공회 러시아는 러시아 정교회 하지만 곳곳에는 이상한 종교도 많이 생긴다. 일본의 사이비 종교의 숫자만 해도 통계에서 잡지 못하는 것을 제외하고도 20만 개나 있다.

 

태교 신앙,군대 안 가는 종교 등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종교는  인간이 만든 가장 힘들고 두려운 죽음의 성찰이다. 그럼에도 종교가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나 기독교의 이론은 서서히 붕괴하고 있다. 그저 무엇을 의지하고 믿는다는 것은 이제 쉽지 않은 세상이다.

 

종교는 왜 필요한가?

 

인간은 나약한 존재다. 특히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에 집단의 공동체가 필요한 것이며 화합과 교류로써 외로움을 달래고 그곳에서 안정을 얻는 것이다. 같은 생각의 아이덴티 즉 종교 안에서 공통분모를 만드는 것이다.

 

종교의 역할이라면?

역시 선의 추구와 자아 반성, 자비의 베풂이다. 그 어떤 종교도 반성, 성찰, 베푸는 마음이 종교가 주는 교훈이자 가르침이다.

 

그럼에도 한 종교에 왜 만족하지 못하고 신흥 종교가 늘어가는 것인가?

 

역시 종교를 깊게 논리적, 과학적, 학문적으로 연구하다 보면 허구성이 발견되는데다 하나의 어떤 종교만으로 만족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꾸만 불만이 늘면서 새로운 종교가 탄생되고  또 다른 집단을 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종교나 단체나 같은 맥락인가?

 

엄밀하게는 다르지만, 추구하는 세계는 같다. 그러므로 커다란 단체는 종교처럼 역할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 지도자를 만들고 그를 추앙하고 따르면 2, 3세대가 되면 저절로 종교화되는 것이다.

 

최근 필자는 어느 분에게 라엘에 대한 책들을 선물 받았는데 전부 다 읽어 보았다.

경주용 자동차 편집인이었던 라엘 이라는 사람은 UFO를 만나게 되고 교신하게 됨으로써 우주를 이해하고 자신의 감각명상을 받아들이는 내용이다. 그의 주장으로는 우리의 육체는 기계므로 각성하게 되면 자유자재로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모든 오감에서부터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두뇌작용까지도. 아주 흥미롭다. 불교에서도 깨치면 나고 죽고 사는 것이 자유자재라고 하는데 말이다.

 

특히 6감은 초감각적 작용을 말하는데 이미 불교에서는 이 부분은 언급하고 있다. 전 세계에 반향을 일으키면서 많은 사람이 라엘을 따르고 있다. 특히 일본도 ,한국에도 신자가 있다. 한국의 모 명상세터처럼 말이다. 여기에 더욱 중요한 것은 쾌감, 불쾌감, 오르가슴 등 컨트롤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는 사랑, 지성, 습관, 인식 모든 인간이 가진 감정은 변화할 수 있다는데 주목된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보고 슬피 우는 자는 지성면에서 아직은 결여되었다는 것에도 상당히 공감하면서 펼친 책이다.  죽음과 삶을 통찰하고 관통하는 의식의 구조는 뇌에서  만들자는데 라엘은 주력하고 있다. 자발적인 마음 비우기 운동을 하다보면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겠구나 싶다. 세상의 모습을 객관화하면서  자아를 찾는 길을 라엘은 말하고 있다. 아주 흥미로운 새로운 가르침이며 우주의 원리를 섭렵하고 자신의 몸을  기계처럼  컨트롤하자는데 그렇다면 인간에게 늘 따라다니는 치덕거리는 불필요한  번뇌나 괴로움도 없을 것이고 인간이 겪는 고해의 바다 역시 해탈의 강을 건넌다는 말이다.

 

새로운 라엘의 사상이다. 만약 이 사상이 엘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처럼 지구를 놀라게 한다면 인간의 근본 감정의 구조까지도 변화하게 될 것이다. 적극 찬성하는 부분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손에 작은 물집이라도 잡혀 아프다고 고통받지만, 뜻밖에 다리가 부러져 걸을 수 없을 때 스스로 일어나려고 한다. 그것은 종교도 아니고 의지도 아니다. 본능이다. 그런데 본능조차도  종교에서 희망과 위안을 받을 수 있다면 종교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종교든지 나쁜 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는 동안 인간답게 살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참회하는 모습은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다. 善을 추구하고 자신을 돌아본다는데 누가 마다하겠는가? 금상첨화로 감정의 컨트롤까지 자유자재라면 얼마나 생이 편안해질까.

 

 

종교에서 세속적인 무엇을 찾지 말고 남을 비교하지 않으며 오로지  본래의 참 자아를 찾으려고 노력한다면 전쟁도 시비도 괴로움도 갈등의 원인도 제거될 것이다. 필자는 종교가 없다. 하지만 신사에 가서 참배하고, 절에 가서 법문 듣고, 교회 가서는 기도한다. 누구를 만나도 종교를 가진 자는 모두가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최근 읽은 라엘의 사상에 진심으로 경의를 표한다. 이제 우리는 기성의 종교로는 이미 식상하고 있다. 더 발전적이고 더 과학적인 해석을 풀이할 우주의 신비자를 추앙하게 될 것이다. 일본 종교 하나 더 추가한다. 라엘의 사상을 추종하는 자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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